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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장아함경 제8권
후진(後秦) 불타야사(佛陀耶舍)ㆍ축불념(竺佛念) 한역
[제2분] ③
8. 산타나경(散陀那經)1) 제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성(羅閱祇城) 비하라산(毗訶羅山)의 칠엽수굴(七葉樹窟)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왕사성에 어떤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이름을 산타나(散陀那)라고 했다. 그는 구경 다니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성을 나와 세존이 계시는 곳으로 왔다. 그때 그 거사는 해를 우러러보며 혼자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은 가서 부처님을 뵙기에 좋은 때가 아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틀림없이 조용한 방에서 삼매에 들어 계실 것이고, 모든 비구 대중들도 또한 참선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저 오잠바리(烏暫婆利:優曇婆羅) 범지녀(梵志女)가 있는 숲으로 가서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세존께 나아가 문안 예배드리고 다시 모든 비구들에게도 가서 문안 예배해야겠다.’
그때 범지녀의 숲에는 한 범지가 있었는데 이름을 니구타(尼俱陀)라고 했다. 그는 500명의 범지 아들들과 함께 그 숲에 있었다. 그 모든 범지의 무리들은 한곳에 모여 높은 소리로 도(道)에 방해되는 혼탁하고 난잡한 이야기들을 떠들어대면서 온종일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혹은 나라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혹은 전쟁과 무기에 관한 일을 의논하기도 하며, 혹은 국가의 화합[義和]에 관한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혹은 대신과 서민의 일을 의논하기도 하며, 혹은 수레와 말로 동산을 노니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고, 혹은 좌석ㆍ의복ㆍ음식ㆍ여자의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며, 혹은 산ㆍ바다ㆍ거북ㆍ자라의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는 등 단지 이와 같이 도(道)에 방해가 되는 이야기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범지는 멀리서 산타나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도록 명령했다.
그 이유는 저기 사문 구담(瞿曇)의 제자가 지금 밖에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문 구담의 청정한[白衣] 제자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으며, 그가 반드시 여기로 올 것이므로 그들에게 마땅히 조용히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범지들은 다 조용히 침묵하였다.
산타나 거사가 범지들에게 가서 문안드리고 한쪽에 앉아 범지에게 말했다.
“우리 스승님 세존께서는 항상 한적한 것을 좋아하시고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시지 않는다. 그대들과 모든 제자들이 모여 도(道)에 방해되는 쓸데없는 말로 소리 높여 떠드는 것과는 다르다.”
범지는 또 거사에게 말했다.
“사문 구담이 사뭇 일찍부터 사람들과 말하지 않았다면 대중들은 무엇으로 사문께서 큰 지혜가 있는 줄을 알았는가? 당신의 스승께서 항상 변두리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애꾸눈 소가 풀을 먹을 때 보이는 곳으로만 치우쳐 가는 것과 같다. 당신의 스승인 사문 구담도 이와 같아서 치우치게 홀로 보는 것만 좋아하여 사람이 없는 곳을 즐긴다. 당신의 스승이 만일 여기에 온다면 우리들은 애꾸눈 소[瞎牛]라고 부를 것이다. 그는 항상 스스로 큰 지혜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한 마디 말로써 그를 궁색하게 만들어 그가 아무 말도 못하게 할 것이다. 마치 거북이가 여섯 기관을 움츠리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버리겠다. 말하자면 아무 걱정 없게 한 화살로 쏘아 도망갈 곳이 없게 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한가하고 조용한 방에 계시면서 천이(天耳)로써 범지와 거사가 이런 논란을 벌이는 것을 들으시고 곧 칠엽수굴을 나와 오잠바리의 범지녀(梵志女)가 있는 숲으로 가셨다. 그 범지는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모든 제자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다 조용히 하라. 사문 구담이 여기로 오고 있다. 너희들은 부디 일어나 맞이하거나 공경 예배하지 말라. 또 앉기를 청하지도 말아야 한다. 별도로 한 자리를 정해 그에게 주고 그가 앉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물어야 한다.
‘사문 구담이여, 그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안온(安穩)함을 얻게 하였으며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게 하였는가?’”
세존께서 점점 그 동산에 다다르시자, 범지들은 저도 모르게 일어나 세존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구담이시여, 잘 오셨습니다. 사문이시여, 오랫동안 서로 뵙지 못했습니다. 이제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우선 좀 앉으십시오.”
세존께서는 곧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웃으시고 다시 잠자코 혼자 생각하셨다.
‘이 모든 미련한 사람들은 스스로 한결같지[自專] 못하여 먼저 약속[要令]을 했으면서도 끝내 지키지[全] 못하니, 그것은 부처의 신통력으로 저들의 나쁜 마음을 저절로 무너지게 했기 때문이다.’
산타나거사는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니구타범지도 부처님께 인사하고 역시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안온함을 얻게 하고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게 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잠깐 멈추어라. 범지여, 내 법은 깊고도 넓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제자들을 가르쳐 안온함을 얻게 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게 하였으니 그대들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스승과 그대의 제자들이 행하는 도법(道法)에 대해서도 청정한 것과 청정하지 못한 것이 있음을 나는 다 말할 수 있다.”
500범지의 제자들은 다 큰 소리로 서로들 말했다.
“구담 사문은 큰 위세(威勢)가 있고 큰 신력(神力)이 있어, 남이 자신의 뜻을 물으면 곧 남의 뜻까지 열어주시는구나.”
니구타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원컨대 그것을 분별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해 설명해 주겠다.”
범지가 대답했다.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행하는 것은 다 비루하다.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손으로 가리는 일이나, 병 속에 든 밥은 받지 않고 발우에 담았던 음식은 받지 않으며, 두 벽의 중간에 있던 밥을 받지 않고 두 사람의 중간에 있던 밥을 받지 않으며, 두 칼의 중간에 있던 밥을 받지 않고 두 발우의 중간에 있던 밥은 받지 않으며, 여럿이 함께 먹는 집의 밥은 받지 않고 아기 밴 집의 밥은 받지 않으며, 개가 문에 있는 것을 보면 그 집의 밥은 받지 않고 파리가 많은 집의 밥은 받지 않는다. 초청하여 주는 음식은 받지 않고 남이 먼저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 그 밥은 받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 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다. 두 그릇에 받아먹지 않고 한 밥덩이를 한 번에 삼켜 그렇게 일곱 번만 먹고 나서 그만 먹는다. 사람들이 보태 주는 밥을 받되 일곱 덩이를 넘지 않는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기도 하고 혹은 2일ㆍ3일ㆍ4일ㆍ5일ㆍ6일ㆍ7일 만에 한 번 먹기도 한다. 혹은 또 과일을 먹거나 혹은 가라지[莠]를 먹거나 혹은 밥물을 먹거나 혹은 싸라기[糜米]를 먹거나 혹은 벼쭉정이를 먹기도 한다. 혹은 소똥을 먹거나 혹은 사슴 똥을 먹거나 혹은 나무뿌리ㆍ줄기ㆍ잎ㆍ과일을 먹기도 하고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기도 한다.
혹은 옷을 입거나 혹은 사의(莎衣)를 입기도 하며, 혹은 나무껍질을 입거나 혹은 풀을 몸에 걸치거나 혹은 사슴 가죽을 입기도 하며, 혹은 머리털을 그냥 두거나 혹은 털을 엮어 입거나 혹은 묘지에 버린 옷을 입기도 한다. 혹은 항상 손을 들고 있는 자도 있고 혹은 평상에 앉지 않거나, 혹은 늘 쭈그리고 앉는 자도 있고 혹은 머리는 깎고 수염을 기른 자도 있다. 혹은 가시덤불에 눕는 자도 있고 혹은 과일 위에 눕는 자도 있으며, 혹은 알몸으로 소똥 위에 눕는 자도 있다. 혹은 하루에 세 번 목욕하고 혹은 하룻밤에 세 번 목욕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없는 온갖 고통들로 제 몸을 괴롭게 한다. 어떤가? 니구타여, 이렇게 수행하는 것을 청정한 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범지가 대답했다.
“이 법은 청정한 것이며,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청정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대들이 청정하다고 하는 법 가운데에 더러운 때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겠다.”
범지가 말했다.
“좋습니다. 구담이시여, 어서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저는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항상 스스로 헤아려 생각하기를 ‘우리가 이와 같이 수행하면 마땅히 공양과 공경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곧 더러운 때[垢]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공양을 받고 나서 그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굳어져서 애착하고 물들어서 버릴 줄을 모르며, 멀리 여의어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번뇌를 벗어날 길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멀리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다 함께 좌선하다가 만약 사람이 없을 때는 마음대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다른 이의 바른 이치에 대해 들어도 기꺼이 인가(印可)하지 않으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다른 이의 바른 질문을 받고도 인색하여 대답하지 않으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만일 누가 사문 바라문에 공양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꾸짖으며 막으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만일 사문 바라문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물건을 먹는 것을 보면 나아가 그것을 꾸짖으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청정하지 못한 음식이 남아돌아도 기꺼이 남에게 주지 않고 만일 청정한 음식이 있으면 탐착하여 저 혼자 먹으며, 자기 허물은 보지 않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出要]을 모르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는 착하다고 자랑하면서도 남에 대해선 헐뜯고 비방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婬]ㆍ이간하는 말[兩舌]ㆍ욕설[惡口]ㆍ거짓말[妄言]ㆍ꾸밈말[綺語]ㆍ탐취(貪取)ㆍ질투(嫉妬)ㆍ사견(邪見) 등 전도(顚倒)된 일들을 행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게으르고 잘 잊어버리며 선정(禪定)을 익히지 않고 지혜가 없어 마치 금수와 같으니, 이것이 바로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고귀한 척 하면서 교만(憍慢)ㆍ만(慢)ㆍ증상만(增上慢)을 부리는데,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신의(信義)가 없고 또한 반성도 없으며 또한 청정한 계율을 지니지도 않고 부지런히 힘써 남의 가르침을 받을 줄 모르며 항상 악한 사람들과 짝이 되어 끝없이 나쁜 짓을 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걸핏하면 성내고 원한[瞋恨]을 품으며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소견만 믿고 남의 장점과 단점[長短]을 찾으며, 항상 사견(邪見)을 품고 변견(邊見)에 사로잡혀 있으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어떠냐? 니구타여, 이렇게 행하는 자를 깨끗하다고 하겠느냐?”
그는 대답했다.
“그것은 부정한 것이지 청정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마땅히 너희들의 더러운 법 가운데서 다시 청정하여 더러운 때가 없는 법을 설명해 주겠다.”
범지가 말했다.
“오직 원컨대 그것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고행하는 자들이 스스로 헤아려 생각하기를 ‘우리의 수행이 이와 같으므로 마땅히 공양ㆍ공경ㆍ예사(禮事)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면, 이것이 고행의 때[垢]가 없는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이 공양을 얻고는 마음에 탐착하지 않고 멀리 여의어 벗어날 줄을 알며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알면, 이것을 고행의 때가 없는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좌선을 함에 항상한 법이 있어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달리하지 않으니, 이것을 고행의 때가 없는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다른 이가 말하는 바른 이치를 들으면 기뻐하며 인가하니, 이것을 고행의 때가 없는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만약 다른 이가 바른 질문을 하면 기쁘게 해설해 주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비록 어떤 사람이 사문 바라문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를 대신해 기뻐하면서 꾸짖어 막지 않으니, 이것을 고행의 때[垢]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비록 사문 바라문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물건을 먹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꾸짖지 않으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청정하지 못한 음식이 있을 때 마음으로 인색하지 않고 비록 청정한 음식이 있어도 집착하여 물들지 않으며 능히 자기의 허물을 보아 번뇌를 벗어나는 법[出要法]을 아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스스로 칭찬하지 않고 다른 이를 헐뜯지도 않으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이간하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ㆍ탐취ㆍ질투ㆍ삿된 견해를 행하지 않으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부지런히 힘써 잊지 않고 선행(禪行) 익히기를 좋아하며 지혜를 많이 닦아 짐승처럼 어리석지 않으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고귀한 척하거나 교만하여 스스로 대단한 척하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항상 신의를 가지고 되풀이하여 행을 닦아 능히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힘써 가르침을 받으며 항상 착한 사람과 짝이 되어 선 쌓기를 그치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원한을 품지 않고 거짓을 행하지 않으며 자기 견해만 믿지 않고 남의 단점을 찾지 않으며 사견을 품지 않고 또한 변견(邊見)도 없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어떠냐? 범지여, 이와 같은 고행은 청정하여 때를 여읜 법이라 하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이와 같은 것은 참으로 청정하여 때를 여읜 법입니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러한 고행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일 견고한 행[堅固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멀었다. 그것은 겨우 처음 시작하는 껍질에 불과할 뿐이다.”
범지가 말했다.
“원컨대 나무의 마디[樹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잘 들어라. 내가 지금 말하겠다.”
범지가 말했다.
“예,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
“범지여, 저 고행자는 자신도 살생하지 않고[不殺生]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신도 도둑질하지 않고[不偸盜] 남을 시켜 도둑질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신도 사음하지 않고[不邪婬] 남을 시켜 사음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신도 거짓말하지 않고[不妄言]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慈心]으로 한 세계를 두루 채우고 다른 세계에도 그렇게 하니, 자애로운 마음은 광대하여 둘도 없고 한량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어 세간에 두루 찬다. 슬퍼하는 마음[悲心]ㆍ기뻐하는 마음[喜心]ㆍ버리는 마음[捨心]도 이와 같다. 이 고행이 고루 행해지면 나무의 마디라고 이름한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컨대 고행견고(苦行堅固)의 뜻을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내 마땅히 그것을 설명해 주겠다.”
범지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고행자는 자기도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 도둑질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사음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사음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한 세계를 두루 채우고 다른 세계에도 그렇게 하니, 자애로운 마음은 광대하여 둘도 없고 한량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어 세간에 두루 찬다. 슬퍼하는 마음ㆍ기뻐하는 마음ㆍ버리는 마음도 그와 같다. 저 고행자는 스스로 과거 무수한 겁(劫) 동안의 일을 알아 1생ㆍ2생에서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형성과 파괴[成敗] 겁수(劫數)의 시작과 끝남[終始]을 다 보고 다 알며, 또 자기에 대해서도 다 보아 안다. 곧 나는 일찍이 저 종성(種姓)으로 태어났었고 이와 같은 이름[名字]과 이와 같은 음식과 이와 같은 수명과 이와 같은 고락(苦樂)을 받은 것과, 저기로부터 여기에 태어났고 여기로부터 저기에 태어났던 이렇게 무수한 겁 동안의 일들을 다 기억한다. 범지여, 이것을 저 고행자의 단단하여 무너짐이 없는 것[牢固無壞]이라고 한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제일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내가 마땅히 그것을 설명해 주겠다.”
범지가 말했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고행자는 자기도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 도둑질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사음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사음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시키지도 않는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한 세계를 두루 채우고 다른 세계도 또한 그렇게 하나니, 자애로운 마음이 광대하고 둘도 없고 한량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어 세간에 두루 찬다. 슬퍼하는 마음ㆍ기뻐하는 마음ㆍ버리는 마음도 이와 같다. 저 고행자는 스스로 과거 무수한 겁 동안의 일을 알아 1생ㆍ2생에서부터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형성과 파괴, 겁수의 시작과 끝을 다 보고 다 알며 또 자기에 대해서도 다 보아 안다. 곧 나는 일찍이 저러한 종성으로 태어났었고 이와 같은 이름ㆍ음식ㆍ수명과 이와 같은 고락(苦樂)을 치렀으며, 저기로부터 여기에 태어났고 여기로부터 저기에 태어났던 것 등, 이렇게 무수한 겁의 일을 다 기억한다.
또 저 고행자는 천안(天眼)이 청정하여 중생의 무리들을 관하면,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난 것과 얼굴이 잘 생기고 못생긴 것과 선업과 악업으로 인하여 나아가는 세계와 행(行)을 따라 떨어짐을 다 보고 다 안다. 또 중생의 몸[身]으로 지은 행위[行]가 착하지 않은 것과 입[口]으로 지은 행위가 착하지 않은 것과 뜻[意]으로 지은 행위가 착하지 않은 것을 안다. 또 현성(賢聖)을 비방하고 삿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음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세 갈래 악한 세계[惡道]2)에 떨어질 것과 혹은 어떤 중생이 몸으로 지은 행이 착하고 입과 뜻으로 지은 행도 착하며, 현성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믿고 행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하늘이나 사람 중에 태어날 것임을 안다. 저 수행자는 천안이 청정하여 중생을 관하면, 심지어 행을 따라 떨어질 곳까지 보아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것을 고행의 제일 훌륭한 것[第一勝]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 가운데에는 또 훌륭한 것이 있다. 나는 항상 이 법으로써 모든 성문(聲聞)을 교화하였고 그들은 이 법으로써 범행(梵行)을 닦았다.”
500범지 제자들은 각자 큰 소리를 내어 서로 말했다.
“이제 세존을 뵙고 보니 가장 존귀하고 으뜸가는 분이시다. 우리 스승은 그분께 미칠 수 없다.”
저 산타나 거사가 범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좀 전에 스스로 말하기를 ‘만일 구담이 여기에 오면 우리들은 마땅히 애꾸눈 소[瞎牛]라고 부를 것이다’고 하였는데, 세존께서 지금 여기 오셨는데도 어째서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또 당신이 좀 전에 말하기를 ‘한 마디 말로써 저 구담을 궁색하게 하여 아무 말도 못하게 할 것이다. 마치 거북이가 여섯 기관을 움츠리는 것처럼 하겠다. 말하자면 아무 걱정 없게 한 화살로 쏘아 도망칠 곳이 없게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당신은 어째서 한 마디 말로 여래를 궁색하게 하지 못하는가?”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전에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는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장로[先宿] 범지들에게 듣지 못했는가? 모든 불여래(佛如來)께서 산림에 혼자 있으면서 한적한 곳을 좋아하시는 것은 내가 오늘날 한가롭게 있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고 그대의 법이 시끄러운 것을 즐겨 쓸데없는 일로 떠들면서 날을 보내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범지가 말하였다.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한적한 곳에 혼자 계시는 것을 좋아하신 것이 지금 세존과 같으며, 그리고 우리들의 법이 시끄러운 것을 즐겨 쓸데없는 일로 떠들면서 날을 보내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구담 사문은 보리(菩提)를 잘 말씀하시고 능히 자기 자신도 조복(調伏)하고 남도 조복시킬 수 있으며, 자신도 그쳐 쉼[止息:선정]을 얻고 능히 다른 사람도 그쳐 쉬게 할 수 있으며, 자신도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고 다른 이도 도달하게 하며, 자신도 해탈을 얻고 남도 해탈하게 하며, 자신도 멸도(滅度)를 얻고 남도 멸도시킨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범지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로 예배하고 손으로 부처님 발을 어루만지면서 자기 이름을 대며 말했다.
“저는 니구타 범지입니다. 저는 니구타 범지입니다. 이제 저는 세존의 발에 귀의하며 예배합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잠깐 기다리라. 그대가 마음으로 깨달으면 그것이 곧 예경(禮敬)하는 것이다.”
그 범지는 거듭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이양(利養)을 위하여 설법하시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양이 있다면 모두 너희들에게 베풀어 줄 것이다. 내가 연설하는 법은 미묘하고 제일가는 것이어서 불선(不善)을 멸하고 선법을 늘어나게 한다.”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명예를 위해서나, 존중받기 위해서나, 도사(導師)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나, 권속을 위해서나, 대중을 위해서 설법하시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대의 권속은 다 그대에게 귀속될 것이다. 내가 연설하는 법은 불선을 멸하고 선법을 늘어나게 한다.”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그대를 불선취(不善趣)와 흑명취(黑冥趣) 가운데 두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대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그대가 다만 모든 불선취와 흑명취를 떠나 버리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 스스로 그대를 위하여 선하고 청정한 법을 연설하겠다.”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그대를 선법취(善法聚)와 청백취(淸白聚)에서 물리치시려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그대는 다만 선법취와 청백취 가운데서 힘써 부지런히 수행하면 된다. 내 스스로 그대를 위하여 선하고 청정한 법을 연설하여 선하지 않은 행을 멸하고 선한 법을 더하게 할 것이다.”
그때 500범지 제자들은 단정한 마음과 바른 뜻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악마 파순(波旬)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500범지 제자들은 단정한 마음과 바른 뜻을 가지고 부처로부터 법을 듣는다. 나는 이제 가서 그 뜻을 부수어야겠다.’
그때 악마는 곧 제 힘으로 그 뜻을 부수어 산란하게 했다.
세존께서 산타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500범지 제자는 단정한 마음과 바른 뜻을 가지고 나에게서 법을 들었는데, 저 하늘의 악마 파순은 그 뜻을 부수어 산란하게 했다. 내 이제 돌아가려 하니 너도 함께 가자.”
세존께서는 오른손으로 산타나 거사를 들어 손바닥에 놓고 허공을 타고 돌아가셨다.
산타나 거사, 니구타 범지 및 500범지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9. 중집경(衆集經)3) 제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말라(末羅)를 유행하시면서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파바성(波婆城)에 있는 사두(闍頭)의 암파(菴婆)동산에 다다르셨다.
세존께서는 보름날 달이 가득 찬 밤에 맨땅에 앉아 계셨고 모든 비구들도 앞뒤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밤에 많은 설법을 마치시고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와서 다 함께 정근하며 잠을 자지 않고 있구나. 나는 등병[背痛]을 앓아 잠깐 쉬고 싶다. 네가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여라.”
그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땅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파바성에는 니건자(尼乾子)가 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뒤에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늘 서로의 잘잘못을 캐고 서로 꾸짖으며 시비하고 있다.
‘나는 이 법을 알지만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사견(邪見)을 가졌지만 나는 바른 법을 가졌다.’
이렇게 말이 서로 얽혀 앞뒤가 없다. 모두 자기 말을 참되고 바르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이길 것이고, 당신 논리는 질 것이다. 나는 이제 담론(談論)의 주인이 될 것이니, 당신들은 물을 것이 있으면 내게 와서 물어라.’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이 나라 백성으로서 니건자를 받드는 자는 다 저 무리들의 다투는 소리를 싫어하고 괴로워하나니, 그것은 그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 비유하면 썩은 탑은 다시 흙을 바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4)의 말씀이 아니다. 모든 비구들이여, 다만 우리 석가(釋迦) 무상존(無上尊)의 법만이 가장 참되고 바르기 때문에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새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가 쉬운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삼야삼불의 말씀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법과 율(律)을 모아 저 다툼을 막고 범행(梵行)을 오래 세우고 이로움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바른 법을 설하셨다.
‘일체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르며 살아간다.’
여래의 설법 중에 또 한 가지 법이 있다.
‘일체 중생은 다 행(行)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住]5).’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법이다. 우리는 지금 함께 이 법과 율을 모아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두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명(名)이며, 둘째는 색(色)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치(癡)며, 둘째는 애(愛)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견(有見)이고, 둘째는 무견(無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무참(無慚)이며, 둘째는 무괴(無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참(有慚)이며, 둘째는 유괴(有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진지(盡智)며, 둘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욕애(欲愛)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정묘색(淨妙色)이며,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진에(瞋恚)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원증(怨憎)이며,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사견(邪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며, 둘째는 사사유(邪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정견(正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며, 둘째는 정사유(正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학해탈(學解脫)이며, 둘째는 무학해탈(無學解脫)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유위계(有爲界)이며, 둘째는 무위계(無爲界)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마땅히 함께 이것을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세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3불선근(不善根)으로서 첫째는 탐욕(貪欲)이며, 둘째는 진에(瞋恚)이며, 셋째는 우치(愚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근으로서 첫째는 불탐(不貪)이며, 둘째는 불에(不恚)이며, 셋째는 불치(不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不善行)으로서 첫째는 불선신행(不善身行)이며, 둘째는 불선구행(不善口行)이며, 셋째는 불선의행(不善意行)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으로서 첫째는 신(身)불선행이며, 둘째는 구(口)불선행이며, 셋째는 의(意)불선행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악행(惡行)으로서 첫째는 신(身)악행이며, 둘째는 구(口)악행이며, 셋째는 의(意)악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행으로서 신선행과 구선행과 의선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상(不善想)으로서 욕상(欲想)ㆍ진상(瞋想)ㆍ해상(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상(善想)으로서 무욕상(無欲想)ㆍ무진상(無瞋想)ㆍ무해상(無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사(不善思)로서 욕사(欲思)ㆍ에사(恚思)ㆍ해사(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사(善思)로서 무욕사(無欲思)ㆍ무에사(無恚思)ㆍ무해사(無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복업(福業)으로서 시업(施業)ㆍ평등업(平等業)ㆍ사유업(思惟業)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수(受)로서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애(愛)로서 욕애(欲愛)ㆍ유애(有愛)ㆍ무유애(無有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유루(有漏)로서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화(火)로서 욕화(欲火)ㆍ에화(恚火)ㆍ우치화(愚癡火)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구(求)로서 욕구(欲求)ㆍ유구(有求)ㆍ범행구(梵行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증성(增盛)으로서 아증성(我增盛)ㆍ세증성(世增盛)ㆍ법증성(法增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욕계(欲界)ㆍ에계(恚界)ㆍ해계(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출리계(出離界)ㆍ무에계(無恚界)ㆍ무해계(無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진계(盡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취(聚)로서 계취(界聚)ㆍ정취(定聚)ㆍ혜취(慧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戒)로서 증성계(增盛戒)ㆍ증성의(增盛意)ㆍ증성혜(增盛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삼매(三昧)로서 공삼매(空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상(相)으로서 지식상(止息相)ㆍ정근상(精勤相)ㆍ사상(捨相)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명(明)으로서 자식숙명지명(自識宿命智明)ㆍ천안지명(天眼智明)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변화(變化)로서 첫째는 신족변화(神足變化)이며, 둘째는 지타심수의설법(知他心隨意說法)이며, 셋째는 교계(敎誡)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욕생본(欲生本)으로서 첫째는 현욕(現欲)으로 말미암아 인간이나 천상에 나는 것이며, 둘째는 화욕(化欲)으로 말미암아 화자재천(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며, 셋째는 타화욕(他化欲)으로 말미암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낙생(樂生)으로서 첫째는 중생이 저절로 성취하여[自然成辦] 환락심(歡樂心)을 내는 것이 마치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처음 태어났을 때와 같은 것이며, 둘째는 중생이 생각[念]을 낙(樂)으로 삼아 스스로 착하다고 외치는 것이 광음천(光音天)과 같은 것이며, 셋째는 지식락(止息樂)을 얻은 것이 변정천(遍淨天)과 같은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고(苦)로서 행고(行苦)ㆍ고고(苦苦)ㆍ변역고(變易苦)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근(根)으로서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당(堂)으로서 현성당(賢聖堂)ㆍ천당(天堂)ㆍ범당(梵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발(發)로서 견발(見發)ㆍ문발(聞發)ㆍ의발(疑發)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론(論)으로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논(論)이 있었으며,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며 이런 논이 있을 것이며, 현재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취(聚)로서 정정취(正定聚)ㆍ사정취(邪定聚)ㆍ부정취(不定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우(憂)로서 신우(身憂)ㆍ구우(口憂)ㆍ의우(意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장로(長老)로서 연기장로(年耆長老)ㆍ법장로(法長老)ㆍ작장로(作長老)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안(眼)으로서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正法]이라고 한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고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네 가지 바른 법을 설명하셨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惡業)으로서 첫째는 거짓말[妄語]이며, 둘째는 이간하는 말[兩舌]이며, 셋째는 욕설[惡口]이며, 넷째는 꾸밈말[綺語]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선행(善行)으로서 첫째는 진실한 말[實語]이며, 둘째는 부드러운 말[軟語]이며 셋째는 꾸밈이 없는 말[不綺語]이며, 넷째는 이간하지 않는 말[不兩舌]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로서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不見言見]이며,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不聞言聞]이며, 깨닫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不覺言覺]이며,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不知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어(聖語)로서 본 것은 보았다고 말하는 것[見則言見]이며, 들은 것은 들었다고 말하는 것[聞則言聞]이며,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覺則言覺]이며,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것[知則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종류의 음식으로서 단식(摶食)ㆍ촉식(觸食)ㆍ염식(念食)ㆍ식식(識食)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受)로서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受)로서 욕수(欲受)ㆍ아수(我受)ㆍ계수(戒受)ㆍ견수(見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박(縛)으로서 탐욕신박(貪欲身縛)ㆍ진에신박(瞋恚身縛)ㆍ계도신박(戒盜身縛)ㆍ아견신박(我見身縛)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자(刺)로서 욕자(欲刺)ㆍ에자(恚刺)ㆍ견자(見刺)ㆍ만자(慢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생(生)으로서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념처(念處)이다. 여기서 비구는 안의 몸을 몸 그대로[內身身]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며, 밖의 몸을 몸 그대로[外身身]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며, 안팎의 몸을 몸 그대로[內外身身]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관(受觀)ㆍ의관(意觀)ㆍ법관(法觀)도 이와 같은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의단(意斷)으로 여기서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법(惡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법은 방편으로써 멸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법은 방편으로써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더하고 넓히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신족(神足)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사유욕정멸행(思惟欲定滅行)을 성취한다. 정진정(精進定)ㆍ의정(意定)ㆍ사유정(思惟定)도 그러하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선(禪)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악(惡)과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는 것이며, 각(覺)과 관(觀)이 그쳐 안으로[內信]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가는 것이며, 기쁨을 떠나 평정을 닦아 생각이 나아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身樂]을 알고 모든 성인이 구하는 기억[憶念]ㆍ평정[捨]ㆍ즐거움[樂]이 있는 제3선에 들어가는 것이며, 괴로움도 멸하고 즐거움의 행도 여의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 멸했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범당(梵堂)으로서 첫째는 자애로움[慈]이며, 둘째는 불쌍히 여김[悲]이며, 셋째는 기뻐함[喜]이며, 넷째는 평정[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색정(無色定)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일체의 색(色)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먼저 성냄의 생각[瞋恚想]을 없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무량한 공처(空處)를 생각하는 것이며,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는 것이며, 식처를 버리고 이미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는 것이며,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법족(法足)으로서 탐하지 않는 법족[不貪法足]이며, 성내지 않는 법족이며, 바른 생각의 법족[正念法足]이며, 바른 선정의 법족[正定法足]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현성족(賢聖族)으로서 여기서 비구들은 의복에 만족할 줄 알아 좋은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금기(禁忌)할 바를 알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알아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그 일을 성취하여 빠짐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을 첫 번째 만족할 줄 아는 데에 머무는 현성족[第一知足住賢聖族]이라고 한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아직 항상 고뇌하여 산란하지 않고, 모든 하늘과 악마ㆍ제석ㆍ사문 바라문과 하늘 및 세간 사람들을 헐거나 꾸짖지 않으며, 음식ㆍ평상ㆍ와구(臥具)ㆍ병들고 허약할 때의 의약 등 모두 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섭법(攝法)으로서 혜시(惠施)ㆍ애어(愛語)ㆍ이인(利人)ㆍ등리(等利)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다원지(須陀洹支)로서 비구들이 부처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법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스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계율에 있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증(受證)으로서 견색수증(見色受證)ㆍ신수멸증(身受滅證)ㆍ염숙명증(念宿命證)ㆍ지루진증(知漏盡證)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도(道)로서 고지득(苦遲得)ㆍ고속득(苦速得)ㆍ낙지득(樂遲得)ㆍ낙속득(樂速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제(聖諦)로서 고성제(苦聖諦)ㆍ고집성제(苦集聖諦)ㆍ고멸성제(苦滅聖諦)ㆍ고출요성제(苦出要聖諦)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문과(沙門果)로서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처(處)로서 실처(實處)ㆍ시처(施處)ㆍ지처(智處)ㆍ지식처(止息處)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지(智)로서법지(法智)ㆍ미지지(未知智)ㆍ등지(等智)ㆍ지타인심지(知他人心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변재(辯才)로서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사변(詞辯)ㆍ응변(應辯)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식주처(識住處)로서 색식주(色識住)는 색을 연(緣)으로 하여 색(色)에 머물며 애(愛)와 더불어 더하고 자라난다[增長]. 수(受)ㆍ상(想)ㆍ행(行)도 그와 같이 머문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액(扼)으로서 욕액(欲扼)ㆍ유액(有扼)ㆍ견액(見扼)ㆍ무명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액(無扼)으로서 무욕액(無欲扼)ㆍ무유액(無有扼)ㆍ무견액(無見扼)ㆍ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정(淨)으로서 계정(戒淨)ㆍ심정(心淨)ㆍ견정(見淨)ㆍ도의정(度疑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지(知)로서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줄 알고, 행해야 할 것을 행할 줄 알며, 즐겨야 할 것을 즐길 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위의(威儀)로서 가야 할 때에 갈 줄 알고, 머물러야 할 때에 머물 줄 알며, 앉아야 할 때에 앉을 줄 알고, 누워야 할 때에 누울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유(思惟)로서 소사유(少思惟)ㆍ광사유(廣思惟)ㆍ무소유사유(無所有思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기론(記論)으로서 결정기론(決定記論)ㆍ분별기론(分別記論)ㆍ힐문기론(詰問記論)ㆍ지주기론(止住記論)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의 4불호법(不護法)으로서 여래는 신행(身行)이 청정하고 모자라거나[闕] 샘[漏]이 없어 저절로 방호(防護)된다. 구행(口行)의 청정ㆍ의행(意行)의 청정ㆍ명행(命行)의 청정도 이와 같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일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다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5입(入)으로서 눈의 빛깔[眼色]ㆍ귀의 소리[耳聲]ㆍ코의 냄새[鼻香]ㆍ혀의 맛[舌味]ㆍ몸의 닿임[身觸]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으로서 색수음(色受陰)ㆍ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개(盖)로서 탐욕개(貪欲盖)ㆍ진에개(瞋恚盖)ㆍ수면개(睡眠盖)ㆍ도희개(掉戱盖)ㆍ의개(疑盖)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하결(下結)로서 신견결(身見結)ㆍ계도결(戒盜結)ㆍ의결(疑結)ㆍ탐욕결(貪欲結)ㆍ진에결(瞋恚結)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상결(上結)로서 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ㆍ무명(無明)ㆍ만(慢)ㆍ도(掉)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근(根)으로서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력(力)으로서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염력(念力)ㆍ정력(定力)ㆍ혜력(慧力)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멸진지(滅盡枝)로서 첫째 비구는 부처님ㆍ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의 10호(號)를 구족한 이를 믿는 것이며, 둘째 비구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한 것이며, 셋째 순박하고 곧아 아첨이 없는 것이니 능히 이러한 자에게 여래께서는 곧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이신다. 넷째는 스스로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착란(錯亂)하지 않게 하여 전에 외운 것을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발(發)로서 비시발(非時發)ㆍ허발(虛發)ㆍ비의발(非義發)ㆍ허언발(虛言發)ㆍ무자발(無慈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선발(善發)로서 시발(時發)ㆍ실발(實發)ㆍ의발(義發)ㆍ화언발(和言發)ㆍ자심발(慈心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5증질(憎嫉)로서 주처증질(住處憎嫉)ㆍ단월증질(檀越憎嫉)ㆍ이양증질(利養憎嫉)ㆍ색증질(色憎嫉)ㆍ법증질(法憎嫉)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취해탈(趣解脫)로서 첫째는 몸의 부정상(不淨想)이며, 둘째는 음식의 부정상이며, 셋째는 일체행의 무상상(無常想)이며, 넷째는 일체 세간의 불가락상(不可樂想)이며, 다섯째는 죽음의 상[死想]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출요계(出要界)로서 첫째는 비구는 욕심에 대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동요되지도 않으며 또 친근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요(出要)를 생각하여 멀리 여의기를 즐기고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다루어 부드럽게 하고 출요로 욕심을 여의며 저 욕심에 의지해 일어나는 모든 번뇌[漏]의 얽매임도 다 버리고 멸하여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고 한다. 진에출요(瞋恚出要)ㆍ질투출요(嫉妬出要)ㆍ색출요(色出要)ㆍ신견출요(身見出要)도 그와 같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희해탈입(喜解脫入)이다. 만일 비구가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마음을 오로지 하면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고,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할 수 있으며, 편안하지 못하던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여기서 비구는 여래의 설법을 듣거나 혹은 범행자(梵行者)의 말을 듣거나 혹은 스승[師長]의 설법을 듣고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의 환희를 얻고, 마음의 환희를 얻고 나면 법애(法愛)를 얻으며, 법애를 얻고 나면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면 곧 선정(禪定)을 얻으며, 선정을 얻고 나면 진실한 지견(知見)을 얻는다. 이것을 처음의 해탈입(解脫入)이라고 한다. 여기서 비구는 법을 듣고 기뻐한 뒤에는 그것을 받아 지녀 외우고, 또한 기뻐하여 남을 위해 설명하며, 또한 기뻐하여 사유(思惟)하고 분별하고 또한 기뻐하여 법에 대해 선정[定]을 얻는 것이니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인(人)6)으로서 중반열반(中般涅槃)7)ㆍ생반열반(生般涅槃)8)ㆍ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9)ㆍ유행반열반(有行般涅槃)10)ㆍ상류아가니타(上流阿迦尼吒)11)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우리는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내육입(內六入)으로서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외육입(外六入)으로서 색입(色入)ㆍ성입(聲入)ㆍ향입(香入)ㆍ미입(味入)ㆍ촉입(觸入)ㆍ법입(法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식신(識身)으로서 안식신(眼識身)ㆍ이식신(耳識身)ㆍ비식신(鼻識身)ㆍ설식신(舌識身)ㆍ신식신(身識身)ㆍ의식신(意識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촉신(觸身)으로서 안촉신(眼觸身)ㆍ이촉신(耳觸身)ㆍ비촉신(鼻觸身)ㆍ설촉신(舌觸身)ㆍ신촉신(身觸身)ㆍ의촉신(意觸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6수신(受身)으로서 안수신(眼受身)ㆍ이수신(耳受身)ㆍ비수신(鼻受身)ㆍ설수신(舌受身)ㆍ신수신(身受身)ㆍ의수신(意受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상신(想身)으로서 색상(色想)ㆍ성상(聲想)ㆍ향상(香想)ㆍ미상(味想)ㆍ촉상(觸想)ㆍ법상(法想)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신(思身)으로서 색사(色思)ㆍ성사(聲思)ㆍ향사(香思)ㆍ미사(味思)ㆍ촉사(觸思)ㆍ법사(法思)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애신(愛身)으로서 색애신(色愛身)ㆍ성애신(聲愛身)ㆍ향애신(香愛身)ㆍ미애신(味愛身)ㆍ촉애신(觸愛身)ㆍ법애신(法愛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쟁본(諍本)이다. 만일 비구가 성내기를 좋아해 버리지 못하고 여래를 공경하지 않으며, 또한 법을 공경하지 않고 또한 스님 대중을 공경하지 않으며, 계(戒)에 있어서 샘[漏]이 있고 물들고 더러워 깨끗하지 못하며,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다투기를 좋아해 남의 미움을 사고 깨끗한 대중을 어지럽게 하며 하늘과 사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안을 관찰[內觀]하라. 만일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렇게 대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거든 마땅히 화합(和合)한 대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이 다툼의 근본을 뽑아라. 너희들은 또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 하여 스스로 관찰하라. 만일 맺힌 원한이 이미 다했거든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그 마음을 막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성내고 뒤틀어져 자상하지 못하고 인색하고 질투하며 교활하고 허망하여 스스로 자기 견해로 인해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고도 버리지 못하고 사견(邪見)에서 헤매고 변견(邊見)과 함께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계(界)로서 지계(地界)ㆍ화계(火界)ㆍ수계(水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찰행(察行)으로서 눈은 빛깔을 살피고 귀는 소리를 살피며, 코는 냄새를 살피고, 혀는 맛을 살피며, 몸은 촉감을 살피고, 뜻은 법을 살피는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출요계(出要界)이다. 만일 비구가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도 다시 진에(瞋恚)가 생긴다’고 한다면, 다른 비구들은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자애로움의 해탈[慈解脫]을 닦고자 하면서 다시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을 다 없앤 뒤에 비로소 자애로움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나는 불쌍히 여기는 해탈[悲解脫]을 행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기쁨의 해탈[喜解脫]을 행해도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이 생기며, 버림의 해탈[捨解脫]을 행해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아(無我)의 행을 행해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상(無想)의 행을 행해도 숱한 어지러운 생각이 생긴다’고 한다면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무상(無上)으로서 견무상(見無上)ㆍ문무상(聞無上)ㆍ이양무상(利養無上)ㆍ계무상(戒無上)ㆍ공경무상(恭敬無上)ㆍ억념무상(憶念無上)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념(思念)으로서 불념(佛念)ㆍ법념(法念)ㆍ승념(僧念)ㆍ계념(戒念)ㆍ시념(施念)ㆍ천념(天念)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7비법(非法)으로서 믿음이 없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慚]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愧]이 없고, 들은 것이 적고, 게으르며, 잊음이 많고, 지혜가 없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정법(正法)으로서 믿음이 있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꾸준히 힘쓰고, 모두 기억하며, 지혜가 많은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로서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공처(空處)에 머물고 식처(識處)에 머물며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근법(勤法)이다. 첫째는 비구가 계행(戒行)에 힘쓰는 것이고, 둘째는 탐욕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며, 셋째는 삿된 소견을 깨뜨리려고 애쓰는 것이며, 넷째는 많이 듣기[多聞]를 힘쓰는 것이며, 다섯째는 정진(精進)에 힘쓰는 것이며, 여섯째는 바른 생각[正念]에 힘쓰는 것이며 일곱째는 선정에 힘쓰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상(想)으로서,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 죽음의 생각[死想], 무상(無常)하다는 생각, 무상은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 괴로움은 나[我]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삼매구(三昧具)로서 바른 견해[正見]ㆍ바른 생각[正思]ㆍ바른 말[正言]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각의(覺意)로서 염각의(念覺意)ㆍ법각의(法覺意)ㆍ정진각의(精進覺意)ㆍ희각의(喜覺意)ㆍ의각의(猗覺意)ㆍ정각의(定覺意)ㆍ호각의(護覺意)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덟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이로움[利]과 쇠함[衰]과 헐뜯음[毁]ㆍ기림[譽]ㆍ칭찬ㆍ비방ㆍ괴로움ㆍ즐거움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해탈로써 색(色)을 대하여 색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며, 마음속으로 색(色)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 색을 관찰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깨끗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며, 색(色)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성내는 생각[瞋恚想]을 없애고 공처(空處)해탈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며,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며,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견해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인(人)으로서 수다원향(須陀洹向)ㆍ수다원ㆍ사다함향(斯陀含向)ㆍ사다함ㆍ아나함향(阿那含向)ㆍ아나함ㆍ아라한향(阿羅漢向)ㆍ아라한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아홉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9중생거(衆生居)로서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중생거(衆生居)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르니 광음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공처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식처(識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열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10무학법(無學法)으로서 무학의 바른 견해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기억ㆍ바른 방편ㆍ바른 선정ㆍ바른 지혜ㆍ바른 해탈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그때 세존께서는 사리불의 말을 인가(印可)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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